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화면을 들여다보는 눈동자에 거침이 없다. 유심히 어느 한곳을 돌려보기를 반복하던 차,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황급히 창을 끄고 노트북을 덮었다. 혹여나 제대로 꺼지지 않았을까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닫은 정국이 전원이 완전히 꺼진 것을 확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큼. 나쁜 짓이라도 한 듯 목을 두어 번 가다듬고 문을 열자 밖이 많이 더웠는지 하얗게 볼이 ...

석진아. “석진아.” “응?” 깜빡 정신을 놔버렸다. 배 터지게 먹고 따뜻한 곳에 있으니 눈이 점점 풀려갔다. 전정국 때문에 초코케익을 몇 개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이러다 전국에 있는 초코케익 다 먹게 생겼네. 달달한 거에 핫초코까지 먹고 있어서 나는 지금 당도 100 % 의 초코 덩어리였다. 전정국은 질리지도 않은지 야무지게 또 한입을 먹고 마지막 조각을...

"엄마. 이불 더 없어?" 쭈뼛거리며 안방문을 열자마자 뭔 이불이냐며 친구끼리 그냥 부대껴서 자라는 잔소리가 날아들었다. 전정국이 듣기라도 할까 일부러 조용히 말한건데 다 소용없게 되어버렸다. 동네 떠나갈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되려 민망해져서 빽 소리를 질렀다. 방문 앞에서 바보처럼 뱅뱅 돌다가 화장실 다녀온 것처럼 자연스레 들어갔다. 다 들었는데 모...

진실게임. 퍽이나 재미있겠다. 전정국은 난데없이 절절한 눈을 하고 있었다. 시대 지난 지가 언제인데 갑자기 진실게임?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에서 상대의 마음을 확신하려고 거는 유치한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덮어버린 문제집 표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냥 공부나 할 걸 그랬나 보다. 내 대답을 기다리던 전정국은 마찬가지로 문제집을 ...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뭘 기대했을까. 천장이 우주로 바뀌어있는 마법? 아니면 손 발이 훌쩍 커버린 어른의 모습? 생전 처음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였다. 이불이 평소보다 더 멀리 걷어차여져있는 것 말고는 정말로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엄청난 마법에 사로잡힌 것처럼 붕붕 떠있었는데. 석진은 제법 큰 허전함을 느끼며 쏟아지는 알람을 중...

음. 전정국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내 것이 아닌 콧김이 느껴졌고 물기 젖은 짧은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뒤에는 짝- 보다는 퍽-! 에 더 가까운 소리였던 것 같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아무 말도 못 한다는데 정확히 전정국이 입술을 두어 번 문지르고 난 뒤에야 눈이 번쩍 뜨였다. 팔이 제멋대로 들려서 정국의 머리통을 강타한 것도 어찌 보면 뒷일을 생각을 하...

이러다가 2등은 커녕 더 떨어지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석진은 커다란 팝콘통을 들고 걸어오는 정국을 보며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아 데자뷰가 아니라 저번에도 이랬었지. 이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앞머리는 손으로 잡아뜯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예쁘게 잘 자라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사복이 아닌 교복이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영화관은 까딱하면 일행...

조각 연성글

‘키스야?’ ‘그게 키스야?’ 이렇게 집중이 안 되는 건 태어나 책을 잡은 뒤로 처음이었다. 모두가 조용한 야자 시간, 인터넷 강의를 듣는 척 영화를 튼 석진은 주인공 친구를 보며 이상하게 왜 박지민이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말투도 박지민하고 비슷한 것 같다. 실제로 눈앞에서 저러면 당장에 달려가서 머리를 콩콩 쥐어박을 것이다. 정말 이상하게 기분이 더...

조각 연성글

“석진아. 뭐 먹을래?” 거슬렸다. 그러니까 전정국이 자꾸 석진아. 석진아. 하는 게 어색하다는 뜻이다. 부모님이고 친구들이고 전부다 김석진. 하고 불러서 그게 더 익숙했다. 성 빼고 이름만 부르면 뭔가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그걸 전정국이 하고 앉아있다. 게다가 재는 날 좋아하잖아. “오리지날?” 그 생각하느라 정국이 뭐라 묻는 것도 못 알아먹고 ...

조각 연성글

'전정국' 님으로부터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전정국'님으로부터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물어뜯은 손톱이 울퉁불퉁해졌다. 한 시간 전에 도착한 정국이의 메세지를 읽지 않은 채로 버티고 있었다. 하필 미리 보기 기능을 꺼놔서 뭐라 보낸지도 모르겠다. 대충 예상하건데 내일이 주말이라서 어디 놀러 가자고 할 것 같았다. 김칫국인 줄은 아는데 그냥 감이었다. 분명해...

조각글

"Here is my secret. It's quite simple. one seens clearly only with the heart. Anything essentials is invisible to the eyes." "..........."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5교시였다. 나른해진 공기 위로 읽혀지는 문장의 의미를 머릿속에 떠올리던 중 머리카락이 쭈...

조각글

만년 2등. 손안에서 성적표가 볼품없이 구겨졌다. 짜증 난다는 말 한마디 뱉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다. 보나 마나 1등은 전정국일 것이다. 마침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 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가만히 입술 안쪽을 씹으며 문제집을 덮었다. 정국은 나를 슬쩍 보더니 금세 시선을 거두고 친구들과 어울려 교실을 빠져나갔다. 왜 그럴까. 전정국은 왜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